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황해도 신천군(信川郡)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신천군의 3ㆍ1운동은 전국적인 시위운동의 전개양상과 보조를 같이 하며 1919년 3∼4월 중 군내 각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신천군의 시위운동은 인근의 문화면(文化面)에서 처음으로 발화되어 전군으로 확산되었다.
곧 3월 27일에는 신천읍에서도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 기독교인과 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준비가 진행된 후 주모자들이 27일 무정리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장꾼들이 합세하였다. 마침 장터에 나와있던 군수 장유(張裕)도 감격에 겨워 만세시위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온 읍민의 독립을 위한 염원은 한결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지하는 일경의 발표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군중은 해산하고 말았다.
만세시위는 4월에 들어서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4월 6일 신천장날의 시위에 이어 4월 7일에는 읍내를 위시하여 용문면(龍門面) 사창리, 용진면 유천리, 북부면(北部面) 석당리 등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크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각지의 시위에 대해 일경은 실탄사격을 가함으로써 사상자가 속출하였으나 시위의 불길은 식을 줄을 몰랐다, 3∼4월 중 일경의 총격으로 인해 시위대에서 17명의 사망자와 9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오병호도 이와 같은 신천군의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9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