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황해도 안악(安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부상을 당하였다. 안악군에서는 은홍면(銀紅面) 온정리(溫井里)에서 만세시위운동이 발화되었다. 온정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으로 1년내내 외지에서 손님이 끊이지 않고 교통 왕래가 빈번하여 일제 헌병주재소의 감시가 심하던 지역이었다. 서울의 광무황제 인산에 참예하고 귀향한 박치간(朴治幹), 정계로(鄭啓老) 등은 이곳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3월 11일을 거사일로 약정하였다. 이들은 매일 밤 유용원(柳龍源)의 집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으며 을흥, 대행(大杏), 서하(西河) 등 각면의 기독교회에 연락하여 군중규합에 힘썼다. 그리하여 예정대로 3월 11일 온정리의 교회 영수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집결하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박치간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은 후 일동은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질서정연하게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서약하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이라고 크게 쓴 선두의 기를 따라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군중의 우렁찬 만세소리가 온 시가를 진동하였고 장보러 나왔던 군중들이 합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대가 시가지를 돌아 헌병 주재소 앞을 지날 때 일 헌병과 한국인 보조원이 대한독립이라 크게 쓴 기를 빼앗으려 하였다. 이에 시위군중과 일 헌병간에 승강이가 벌어지자 이를 보고 있던 헌병들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다. 격분한 군중들은 투석으로 헌병대에 맞섰으나 적의 총격으로 3명이 순국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김광언은 당시 72세의 고령으로 시위대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 헌병의 총격으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略(金秉祚, 1920) 上篇 6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91∼29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