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만주의 독립군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이 무장세력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을 무렵, 국내에서는 3·1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독립군은 소련 연해주를 전전하게 되었다. 자유시사변을 겪고 난 후 만주출신 독립군들은 다시 간도 지역으로 복귀하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효과적인 대일 항쟁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김병권은 이러한 시기인 1922년 4월 4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일대에서 독립군 단체의 부장(部長)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국내에 진입하여 함남 갑산군(甲山郡) 보혜면(普惠面) 신흥리(新興里)에서 일경이 체포하려 하자 완강히 저항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高麗書林, 1989) 第3卷 54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