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만주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전사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11월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부민단(扶民團)과 신흥무관학교 등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여 한족회(韓族會)로 개편함과 동시에 군사조직으로 군정부(軍政府)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상룡(李相龍), 부총재 여준(呂準), 참모장 이탁(李沰) 등이 선임되었다. 군자금모집과 선전활동 및 군사 활동에 주력하였다. 군자금의 모집은 주로 한족회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군사활동은 신흥무관학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었다. 국내의 친일파 관료, 적의 밀정(密偵) 및 서간도 지역의 친일단체인 보민회,거류민회 등의 간부들에 대한 처단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주로 핵심부대인 의용군(義勇軍) 제1중대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이 부대는 백서농장(白西農庄)을 운영하던 채찬(蔡燦),신용관(辛容寬)에 의해 지도되었다. 1924년 11월 25일에 정의부의 결성에 참여함으로써 그 발전적 해체를 도모하였다.
이규사는 1922년 2월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 소청구(小淸溝)에서 서로군정서 정찰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월경한 평안북도 문흥경찰서원(文興警察署員) 4명과 교전(交戰) 중 전사(戰死)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高等警察關係年表(조선총독부경찰국, 1930)
- 不逞鮮人 動靜에 관한 건 (公 제380호, 1920. 12. 1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국사편찬위원회) 제2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