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나자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독립군부대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반격에 밀려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최덕희는 이러한 시기인 1924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 강산두도구(岡山頭道溝)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 보갑대(保甲隊)와 무기 매매를 교섭하다가 중국 보갑장(保甲長) 주기산(周岐山)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교섭이 결렬되었다. 이때 보갑대의 기습을 받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4. 2.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