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벽동(碧潼) 사람이다.
만주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통신원으로 활약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민은 무장세력의 양성과 군비를 갖추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서간도 지역에서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대한독립단 등 다수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이들 독립군 단체들은 만주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 북부지역에도 진공하여 활발한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채진은 이시기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 부대원아(不大遠兒)에서 대한독립단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되어 무장투쟁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20년 11월 24일 일본군에 붙잡혀 11월 26일 호자구(蒿子溝)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8卷 471∼47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