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전사(戰死)하였다.
평안북도독판부(平安北道督辦府)와 청년단연합회 및 대한독립단의 대표들은 1919년 12월 경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광복군총영을 결성하였다. 참리부(參理部), 사령부(司令部), 군영(軍營)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참리부장에는 조병준, 사령장에는 조맹선(趙孟善)이 임명되었고 변창근(邊昌根), 오동진(吳東振), 홍식(洪植), 최시흥(崔時興), 최찬(崔燦), 김창곤(金昌坤) 등이 각 군영의 영장을 담당하였다. 조직을 결성한 광복군총영은 이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는데 1920년 한 해만도 일본군경과의 교전이 78차례였으며, 주재소 습격이 56개소, 면사무소 및 영림장(營林場) 소각이 20개소, 일본경찰 사살 95명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전치운은 광복군총영의 대원으로 1922년 7월 28일 함남(咸南) 갑산군(甲山郡) 포태동(胞胎洞)에서 대원들과 함께 5시간이 넘는 교전에서 순사 13명을 처단하고 일본인 순사 3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이 과정에서 전사(戰死)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2. 9. 11)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 257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55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27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