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조맹장은 1909년 4월 의령(宜寧),함안(咸安)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守備隊)와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즉 동년 8월 해산 군인들의 의병참여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 계층도 유생,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전면전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경남 지방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 침략 세력과 그에 편승한 친일 주구배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하였다.
조맹장은 1909년 4얼 17일 의령군(宜寧郡) 용암면(龍岩面)에 거주하는 전무진(田珷鎭)과 이인세(李仁世)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체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맹장 등과 함께 활동하던 정종도(鄭鍾道)와 김득경(金得敬)도 함안군 상리면(上里面)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포위 수색에 검거되었다. 조맹장을 비롯한 정종도와 김득경은 호송 중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4輯 83면
- 暴徒에 關한 編冊(慶尙南道 警務局:1909. 4.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