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인 연통부(聯通府)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말 의주 일대에서 일경과 교전을 벌이던 중 순국하였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구심적 위치에서 국민적 기반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에 따라 1919년 7월 10일자로 국내 조직으로 연통부를 설치하였는데, 도·군·면 단위에 계통적 조직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연통부는 '국민간에 기맥을 상통하고 복국(復國) 사업의 완성을 기하여 내외활동의 일치'에 목적을 둔 것으로, 임시정부의 선전, 통신 연락, 독립운동 자금 수합 및 독립운동 근거지의 확보, 국내 정보의 파악 등이 주요 임무였다. 그리하여 연통부는 국내 각처에 설치되었는데, 특히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 등 북부 지방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박계락은 이러한 연통부의 평북 구성군(龜城郡) 참사(參事)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연통부는 1919년 말부터 일경에 발각되면서 대부분의 조직이 파괴당하였고, 그는 1919년 말경 의주와 삭주(朔州)의 접경지역에서 일경과 교전하던 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朴殷植全書 上卷 6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