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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0109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金昌洪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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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6 훈격 애국장
1908년경 의병장(義兵將)으로서 황해(黃海) 연안(延安)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 전사(戰死)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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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일제는 1904년 한국 침략의 경쟁국인 러시아 군대를 기습공격하여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여 한국을 그들의 전쟁기지로 삼았다. 그런 다음 같은 해 8월에는 한일협약으로 고문정치를 강요하여 재정권과 외교권을 장악하여 갔다. 이어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전사자가 10만 명으로 알려질 정도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들의 항쟁은 처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김창홍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황해도에서 기의하여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8년 동료 의병들과 함께 의병 군수금품 모금 활동 중 연안수비대(延安守備隊)와 교전(交戰)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0輯 368·369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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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창홍 - 미상 후기의병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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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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