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간도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모든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독립군은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세력들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등을 조직하여 지속적으로 항일전쟁을 수행하였다.
김중승은 이러한 시기인 1922년 음력 11월 만주 집안현(輯安縣)에서 어인동(魚因洞) 백가장(百家長)으로서 관민교제의 중추가 되어 동포의 편의를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음력 11월 24일 밤 이 지역에 침투한 고산진(高山鎭) 일경에게 붙잡혀 참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3. 1.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