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5일 경북 의성군 신평면(新平面) 덕봉동(德峰洞)에서 기독교 도인 김수성(金守星)·손문원(孫文遠) 등과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이학술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해 갔다. 이들은 3월 2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격문 등을 준비하였다.
그는 거사 당일 밤 9시에 마을 청년 50여 명과 더불어 덕봉동 앞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횃불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거쳐 신평(新平) 주재소를 향하여 가던 중 일경에 의해 이학술 등 중심 인물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5.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84·38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