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고 고종이 강제 퇴위되면서 전국적으로 항일인사들이 다시 의진을 조직해 투쟁에 돌입했다. 당시 의병에 투신해 부하 20여 명을 데리고 무주군과 영동군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며 항일전을 벌였다.
1908년 음력 9월 26일 밤 남정순(南正淳) 등 6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전라북도 무주군 북면(北面) 산의실리(山衣實里)에서 엽전 50냥을 모집했다. 같은 달 그믐날 밤에는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순양리(順陽里)에서 금 20냥을 모금하였다. 음력 11월 4일 밤 영동군 양남이소면(陽南二所面) 묵정리(墨井里)에서 엽전 2냥 5전을 모금하였고, 남이면(南二面) 하묵정(下墨丁)에서 30냥을 모금했다. 음력 11월 그믐날에는 11명의 부하와 함께 총 7정을 가지고 영동군 서일면(西一面) 대초지동(大草旨洞)에서 1,300냥을 모집했다. 이후에도 부하들로 하여금 군자금 모금 활동을 이어가도록 지도했다. 그러나 군자금 모집 활동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1909년 4월 3일 영동경찰서 순사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 1909. 4. 30)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篇冊)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5) 제14권 44~46, 5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