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해주 지방의 젊은 유지로 1919년 3·1운동 때 운동자금을 지원하면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치렀다. 출옥 후 재차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동년 9월 10일 신천군(信川郡) 초리면(草里面)에서 군중들을 운집시켰는데,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에 의해 5명이 사살되고 그는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1920년 4월 7일 해주청년회(海州靑年會)가 창립될 때 창립위원으로 선임되어 청년회 활동에 참가하였던 그는 1920년 8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들이 일제 주구인 은율군수(殷栗郡守)를 처단할 때, 자택을 독립단원들의 거사 계획과 연락 및 단원들의 은신처로 제공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1921년 6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만국개방경기(萬國開放競技)가 개최되자, 여운홍(呂運弘)·임원근(林元根) 등 7명과 함께 조선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한국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의 의지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한국인들은 극동 국가들에 의해 치러지는 극동대회에 선수를 파견할 계획이었으나 일제의 거부와 탄압으로 인하여 만국개방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1922년 12월에는 서울에서 이광수(李光洙) 등과 함께 수양동우회 조직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34면
- 조선청년운동사(선우기성, 1976) 410·411면
-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2) 245면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1983) 1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700면
- 독립신문(1921. 5. 31)
- 동아일보(1921. 7. 20, 7. 21, 8. 10, 8. 12)
- 조선합병10년사(조선출판협회, 1923) 589∼602면
- 3·1독립운동실록(3·1동지회, 1985) 하권 292∼29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287·142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