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13일 동래읍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7일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 학생 대표들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은 동래고보(東萊高普) 3, 4학년생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들은 친구들의 하숙방을 전전하면서 협의한 끝에 동래읍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태극기·독립만세기 제작에 착수하였다. 광무황제(光武皇帝)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 그는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동래군청 앞 광장에 모인 시위군중에게 인쇄물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런데 점차 장꾼들까지도 가담하게 되면서 읍내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감격한 어떤 조선인 경찰헌병 보조원은 제복과 제모를 벗어던지고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50여 명의 일본군과 기마 경찰이 출동하여 야만적인 발포를 하며 닥치는대로 군중을 체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42∼97面
- 東萊高等學校80年史(東萊高等學校, 1978) 124∼133面
- 釜山出身獨立鬪士集(朴載赫義士碑建立同志會, 1982)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60·261面
- 學籍簿(東萊高等學校)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82∼186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