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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황해도 곡산(谷山) 사람이다.
1920년 부친 김정일(金그正의一)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유하현(柳河縣)의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졸업하였다.
1932년 6월에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제2중대 참사로 무송(撫松)·안도(安圖)·신빈(新濱)·통화(通化)·집안(輯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34년 음력 7월에 집안현 외차구(外 溝)에서 김창화(金昌化)·김병하(金炳河)·강성채(姜成彩)·정종준(鄭宗俊)·김승호(金承浩)·이봉영(李峯英) 등과 함께 일본 밀정인 김용환(金龍奐)을 처단하고 붙잡혔다. 김용환은 전직 위원군(渭原郡) 순사로서 집안현 유수림자(柳樹林子) 강구(江口)에서 국민부의 상황을 일경에 밀고하고 교민들이 군자금을 납부하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하던 자이다.
1935년 7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살인 등 7개의 죄명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동년 9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출옥후 1946년 초에 부모를 찾아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으로 돌아갔다가 심양9沈陽)에서 병사하였다.
장남 김세걸(金世杰)은 현재 심양시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
- 한민족독립운동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3면
- 동아일보(1934. 12. 8, 12. 29)
- 본인자전서(1958. 6. 1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09면
- 매일신보(1935.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