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06년 3월
3. 1907년 12월
4. 1908년 4월 9일
5. 1909년 3월
6. 1909년 6월 이후
7. 1909년 12월 5일 영광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1873년 전남 광주시 당부면 북촌리(當府面 北村里)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9월 광산(光山) 송정읍(松汀邑)에서 왜군을 타살하고 피신하였다.
1906년 3월 아우 원범(元範)과 함께 광주 무등촌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1907년 9월 호남의진의 거두인 성재 기삼연(省齋 奇參衍)과 김 준(金準 일명 泰元)이 합진하여 일대성세를 이루게 되자 12월 김 준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이 때 부하 삼백여 명으로 광주 수비대(光州守備隊)와 교전하여 40여 명을 사살하였다.
1908년 1월 성재와 김 준이 순국하여 일시 호남의진의 기세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으나 김 준 휘하의 부장들이 각기 의병장이 되어 의진을 재편하면서 전열을 정비하여 갔다. 대표적인 의병장은 오성술(吳聖述)·조경환(趙敬煥)·전해산(全海山) 등이 있었다.
김원국은 이즈음 함평의 적량면(赤良面)·여황면(艅艎面)·오산면(鰲山面) 등지에서 왜병과 접전하였다.
김 준 순국 후 개별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9월 광주 선암시장(仙岩市場)에서 의병장 조경환(曺京煥)을 만나 동생 원범이 조경환의 의진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알고 그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동생은 도포장(都砲將)에 임명되어 형제가 함께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1일 창평 무동촌(昌平 舞童村)에서 11일에는 장성 낭월산(長城 郎月山)에서 3월 7일에는 영광 토산(靈光 土山)에서, 25일에는 광산 어등산(光山 魚等山)에서 각각 교전하였다.
1909년 3월에는 장성군 남일면(南一面)에서 부하 150명을 거느리고 일병과 교전하였으며, 3월 18일에는 부하 80명과 함께 나주(羅州) 등지에서, 5월 19일에는 불갑산(佛甲山)에서 적과 싸웠다.
6월에 광주 우암면(牛岩面)에서 왜병과 교전하던 중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체포당하였다. 목포로 압송되던 도중 호송하던 일헌병의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 결박당한 손을 몰래 풀고 돌을 집어서 헌병을 타살한 후 함평 먹굴산에 잠시 피신하였다.
조경환 의병장이 순국한 뒤에는 그 휘하의 의진을 스스로 통솔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곽진일(郭鎭一)을 선봉장, 오덕신(吳德信)을 중군장, 김재연(金在淵)을 후군장으로 하여 부하 오백 명을 거느리고 광주·나주·능주(綾州)·동복(同福)·창평·담양(潭陽)·장성·영광 등지에서 적을 괴롭혔다.
1909년 12월 5일 영광 불갑산(佛甲山)으로 이동 중 왜군과 교전하다가 체포되니 36세의 한창나이였다. 광주 감옥을 거쳐 대구 감옥으로 이송되어 마침내 한을 머금고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대사전 27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55·56면
- 호남절의사 상권 4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2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