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처음에는 신돌석(申乭石) 의진의 교련장(敎鍊將)으로, 나중에는 김대규(金大圭)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6년 전기 의병운동 당시 영해군(寧海郡) 의진의 중군장으로 활동했던 신돌석은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재차 거의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6년 음력 3월 13일 동생인 신우경(申友慶)과 함께 의병들을 모집하여 경북 영덕(盈德) 복평리(福坪里) 축산(丑山)에서 거병하였다. 이화진은 이 때 교련장으로 선임되어 신돌석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8년 11월 18일 김상렬(金相烈) 형제에 의해 신돌석 의병장이 피살, 순국한 이후에는 김대규 의진에서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국 각지를 전전하면서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1935년 만주로 망명해서도 농업에 종사하면서 재만 한인동포들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여 불굴의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돌석장군실기(간행년도 미상) 23면
- 독립운동합동기념비(영덕군, 1987년 건립)
- 영덕군지(영덕군, 1981) 6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