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독립군 천마산대(天摩山隊)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1921년 3월 평북 희천(熙川)에서 일군(日軍)과 교전 중 순국하였다.
천마산대는 3·1운동 이후 1920년대 초까지 국내를 거점으로 한 무장투쟁단체 가운데서 혁혁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단체였다. 천마산대란 명칭은 이 단체의 근거지가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녕삭면(古寧朔面) 천마산(天摩山)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천마산대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심용준(沈龍俊) 등 구한국군(舊韓國軍)을 중심으로 조직, 최시흥이 그 단장이 되어 청년대원 500여 명을 모집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천마산대는 군자금 모집·일관공서(日官公署) 파괴, 관공리(官公吏) 처단·일군경과의 교전 등을 목적으로 조직한 국내 독립군 단체였다. 이들은 중국군으로부터 구득하거나 일군경과의 교전 또는 헌병, 주재소 습격 등으로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얻었다.
천마산대에 참가한 김한봉은 1921년 3월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응동(膺洞)에서 일병의 피습을 받아 교전을 벌이던 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史(金承學) 107面
- 獨立新聞(1922. 1. 1)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9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