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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0049
성명
한자 權準羲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18 훈격 대통령표창
1915년 7월 경북(慶北) 대구(大邱)에서 박상진(朴尙鎭)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활동한 혐의로 1918년 체포되었다가 면소(免訴) 방면(放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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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대한광복회는 1913년 12월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豊基面)에서 조직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1915년 1월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합세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이다. 1915년 음력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무장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대한광복회의 창립목적은 국권 회복·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만주(滿洲)의 동삼성(東三省)에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었다.

계획에 따라 한인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농토를 개간해 식량과 병력을 공급할 계획도 세웠으며, ‘무력준비·무관양성·군인양성·무기구입·기관설치·무력전’이라는 투쟁방략을 세우고 군대식으로 조직을 편제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해 만주의 독립군 기지로 보냈다. 또 국내에 확보한 기지를 거점으로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을 두었으며, 활동의 거점으로 각지에 곡물상(穀物商)을 설립하기도 했다.

대한광복회는 일정한 조직 편제를 갖춤과 동시에 전국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고 만주에도 여러 군데 거점을 마련하였다. 사령관 박상진, 지휘장(指揮長) 우재룡·권영만, 경상도지부장 채기중, 충청도지부장 김한종, 전라도지부장 이병찬(李秉燦), 경기도지부장 김선호(金善浩), 함경도지부장 최봉주(崔鳳周), 평안도지부장 조현균(趙賢均), 황해도지부장 이해량(李海量), 강원도지부장 김동호(金東浩) 등이 각각 담당하였다. 만주의 사령관은 이석대(李奭大)가 맡았다. 그가 평양 은산금광(殷山金鑛)에서 체포된 후에는 김좌진(金佐鎭)이 사령관을 맡았다. 이와 같은 조직체계와 실천계획을 바탕으로 대한광복회에서는 먼저 군자금 모집과 친일적인 지주나 부호, 일본인을 처단하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때 권준희는 유시만(柳時萬)·권준흥(權準興)·권영식(權寧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박상진에게 전달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권준희는 대한광복회에서는 고문 역할을 맡았다고 하며, 1913년 풍기광복단 조직 때부터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1918년 초 대한광복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검거 선풍이 일어날 때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공갈죄(恐喝罪)’로 기소되었다.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5월 3일 면소(免訴) 방면(放免)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간찰(簡札)(1918. 4. 17)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179~182면
  • 우암문집(友巖文集)(1972~1974 편집)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75면
  • 안동판독립사(安東版獨立史)(독립지사안동기념사업회회장, 1985)
  • 대한독립항일투쟁총사(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편찬위원회, 1989) 하권 65면
  • 이퇴계(李退溪)의 실행유학(實行儒學)(권오봉, 1996) 44면
  •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김희곤, 2001) 98~99면
  • 국역 조선시대 서원일기(한국국학진흥원, 2007) 680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권준희 자: 계상(啓象), 호: 우암(友巖) 경상북도 안동(安東) -
본문
1849년 9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 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계상(啓象), 호는 우암(友巖)이다. 조선 후기 학자 병곡(屛谷) 권구(權榘)의 현손이다. 생부는 권찬(權鑽)이고, 백부 권익(權翼)에게 출계하여 수곡(樹谷) 권보(權甫)의 종손이 되었다. 경학(經學)을 비롯하여 『심경』·『근사록』등을 탐독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손자 권오돈(權五敦)·권오운(權五雲)·권오헌(權五憲)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가 결합하여 1915년 7월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광복회 창립 목적은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으로 일제와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었다. 주요 활동은 군자금 모집이었다. 이에 류시만(柳時萬)·권준흥(權準興)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1월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을 비롯해 채기중(蔡基中)·임세규(林世圭) 등 주요 인물이 일본 경찰에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되었다. 당시 71세로 대한광복회 회원 중 가장 고령이었다. 공주감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 1918년 5월 3일 증거 불충분으로 면소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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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북도 안동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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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공원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경상북도 영주시
2 생가 독립유공자 권오돈, 권준희 생가(수곡고택)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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