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1914년부터 강동금융조합에 근무하던 그는 3·1독립운동 당시 고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표영준(表永俊)·이성규(李成奎)·이석돈(李錫敦) 등과 함께 비밀결사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이어 1920년 8월 이환욱(李桓郁)·이득수(李得洙)·이석돈 등 10여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결사 농민단(農民團)을 조직하였다.
주로 농민과 탄광부를 중심으로 결성된 농민단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제 경찰관서를 폭파하여 한국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로 하고 탄광에서 다이나마이트를 입수하여 폭탄을 제조하였다. 그리하여 동년 9월 18일 그는 이성규와 더불어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투척·대파시켰다. 또한 강동군내 원탄(元灘)과 고천(高泉)의 경찰관주재소도 폭파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화약의 준비가 뜻과 같지 않아 실패하였다.
이후 이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여 9월 30일 이득수·이근배(李根裵)·최인택(崔仁澤)·최선식(崔善植)·서달선(徐達善) 등이 강동군의 자산가 이관식(李寬植)으로부터 군자금 142원을 모금하였고, 10월 9일에는 동군의 서상목(徐相穆)에게서 군자금 백원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썼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1920년 10월 12일 일경에 붙잡혀 동년 11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가출옥하였다.
이후 그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1945년 10월 천도교 강동군 삼등면 종리사(宗里師)와 1947년 천도교 지방도사(地方道師)가 되어 교세확장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1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8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79·48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20·12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