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9년 4월 17일 최석(崔錫)과 함께 환인현 홍석뢰자(桓仁縣紅錫磊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였으며, 1920년 8월에 정무총장(政務總長) 이탁(李沰)의 명을 받고, 이종식(李宗植)과 함께 평안북도에 진입하여 동년 9월 1일 친일파로 알려진 후창(厚昌)군수 계응규(桂應奎)를 총살하였다.
그후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2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동년 4월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19년 4월 17일 최석(崔錫)과 함께 환인현 홍석뢰자(桓仁縣紅錫磊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였으며, 1920년 8월에 정무총장(政務總長) 이탁(李沰)의 명을 받고, 이종식(李宗植)과 함께 평안북도에 진입하여 동년 9월 1일 친일파로 알려진 후창(厚昌)군수 계응규(桂應奎)를 총살하였다.
그후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2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동년 4월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9년 4월 17일 최석(崔錫)과 함께 환인현 홍석뢰자(桓仁縣 紅錫磊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였으며, 1920년 8월에 정무총장(政務總長) 이탁(李鐸)의 명을 받고, 이종식(李宗植)과 함께 평안북도에 진입하여 동년 9월 1일 친일파로 알려진 후창(厚昌)군수 계응규(桂應奎)를 총살하였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2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동년 4월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6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4면
- 기려수필 296·297·30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825면
- 동아일보(1921. 4. 25, 7. 12, 11. 17)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97·30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