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13년 자금을 마련키 위하여 귀국하였다가
3. 1917년 재차
4. 1919년 국내잠입 연락처를 마련하다.
5. 동년
6. 동년
7. 1920년
8.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성천(成川) 사람이다.
이용규(李龍奎)의 아들이며 이탁(李鐸)의 동생이다. 14세 되던 해에 평양 청산(靑山)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했다.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된 직후인 1911년 형을 쫓아 만주로 망명하여, 유하현 제1구 야저구(柳河縣第一區野猪溝)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3년에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향에 들렸다가 성천서(成川署)에 체포되어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7년에는 재차 만주로 망명하여 광동(廣東)군관학교에서 군사학과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19년에 서로군정서 의용대장이던 그는 일본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하여 이탁·전두식(全斗湜) 등과 함께 폭탄 수백개를 제조하였다. 그러나 봉천성 천성여관(奉天省天成旅舘)에 두었던 폭탄 1개가 폭발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상해로 도피한 그는 구국모험단장(救國冒險團長) 김성근(金聲根)의 요청으로 이 단체의 간부가 되어 폭탄제조 기술자를 양성하였다.
1920년 미의원단의 한국 방문시 광복군에서 사용할 폭탄을 상해 공동조계에서 제조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동년 9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55·156·16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113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35·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2권 42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48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6·268·271·272·276면
- 동아일보(1920. 7. 8, 1921. 3. 17)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24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9·290·4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