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군위(軍威) 사람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1926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다니면서 그는 이곳에서 원심창(元心昌)·정찬진(丁贊鎭)·김호구(金豪九) 등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928년 3월 하순 김호구·정찬진·오병현(吳秉鉉)·장명학(張命學)·김양복(金養福)·송주식(宋柱軾) 등과 더불어 명치대학(明治大學) 운동장에서 모임을 갖고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일성단(一聲團)을 조직하였다.
동단은 일본천황을 암살하고 중요기관을 파괴할 것을 투쟁목표로 삼고 행동강령으로 기밀엄수, 이탈불허, 변절자 처단 등을 결정하였다. 동단은 중국 상해나 만주에서 무기를 입수하는 대로 항일 폭력투쟁을 펴나가기로 하였다.
그후 이들은 동지규합을 위하여 5회에 걸쳐 ≪흑전(黑戰)≫이란 선전책자를 만들어 국내외에 우송하였는데, 그는 김호구와 함께 흑전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또한 1929년 5월 그 동안의 선전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살피고 무기를 구입할 목적으로 김호구와 오병현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고향인 평남 용강군(龍岡郡)으로 돌아온 김호구와 오병현은 단오절에 씨름대회가 열리는 것을 이용하여 '농민에게 고한다'라는 제목으로 총독정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농민들을 단결하여 일제타도에 앞장설 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격문을 군중들에게 살포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동단의 조직이 노출되어 그는 동경에서 일경에 붙잡혀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1930년 11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신문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9. 7. 26, 7. 28, 1929. 8. 1, 1930. 11. 15, 11. 9)
- 한국아나키즘운동사 전편 250∼2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