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3월 2일 부여 (扶余) 에서 신사참배 (神社參拜) 를 반대 (反對) 하는 자 (者) 를 탄압 (彈壓) 함으로 박종한 (朴鍾漢) 동지 (同志) 와 같이 심야 (深夜) 도끼로 부여신사 (扶余神社) 를 파괴 (破壞) 하고 1943년 1월 15일에는 조선독립단 (朝鮮獨立團) 에 가담 (加擔) 하였으며 1944년 4월 24일에는 부여 (扶余) 부소산 (扶蘇山) 사비루 (泗沘樓) 기둥에 조선독립만세 (朝鮮獨立萬歲) 라고 대서 혈서 (大書血書) 첩부 (貼付) 하고 최을서 (崔乙書) 와 같이 독립만세’ (獨立萬歲) 삼창 (三唱) 을 고창 (高唱) 하여 등산객 (登山客) 을 경탄케 한 바 동년 (同年) 5월 2일 체포 (逮捕) 되어 대전지법 (大田地法) 강경지원 (江景支院) 에서 동년 (同年) 9월 22일 징역 1년을 언도 (言渡) 받아 옥고 (獄苦) 를 치르고 1945년 8월 4일 가출옥 (假出獄)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43년 1월 15일 국내 항일단체인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여 김종구(金鍾九)·최헌길(崔憲吉)·조동훈(趙東勳) 등 수명의 동지를 만주(滿洲)로 밀파하는 등 국외 독립운동과의 연계투쟁에 힘썼다.
그러던 중 1944년 4월 24일 부여 부소산(扶蘇山) 사비루(泗沘樓) 기둥에 혈서로 '조선독립만세'라는 글을 써붙이고 동지 최을서(崔乙書)와 함께 만세삼창을 외친 후 1주일간 도피하다가 동년 5월 2일 일경에 붙잡혀 대전지방법원 강경지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소년가출옥증표(1945. 9. 21 만료 : 가출옥 1945. 8.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