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청북도 제천(堤川) 사람이다.
그는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졸업반 때인 1919년에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이 끝나자 곧 대한문(大漢門)까지 행군하다가 체포되어 종로경찰서로 연행, 심문을 당하고 2일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그는 일본어 서적을 모두 태우고 졸업반임에도 불구하고 총독부 관립학교라 하여 나가지 않았다. 또 그는 재학시 한국인 학생들로 구성된 경성공업전문학교의 공우구락부(工友俱樂部)에서 구입했던 등사기구를 계동(桂洞)의 자택에 보관하고 독립신문·팜플렛 등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의 감시에 의해 가택 수색 끝에 체포되고 등사기구 일체를 압수 당하였다. 그러나 독립신문 발간은 증거 불충분이라 하여 체포된 지 2주일만에 석방되었다.
1921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같이 독립운동 대열에 적극 참여 활동하였다고 한다.
19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1927년 시카고의 루이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재미 동포들과 교우하는 가운데 우남 이승만(李承晩)·임병직(林炳稷) 등과 의기투합하여 대한인동지회(총재 이승만)에 가입 활동하였다.
1932년부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일간지인 삼일신보(三一申報)를 발행하여 교포들에게 배포하였으며 1942년에는 대한인동지회 로스앤젤레스 지방회장으로서 임병직 등과 외교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미국 내의 유력한 인사들을 찾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임병직의 서신
- 이승만의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