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 박천(博川)·구성(龜城) 등지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0년 2월 12일에는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하에서 일하였다. 동년 2월 18일에는 정주 읍내에서 김태규(金泰奎)를 만나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제국의 기반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인쇄물 100여장을 한병주(韓秉柱)·장종삼(張鍾三)에게 교부할 것을 의뢰하고, 서울에 배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동년 4월 19일에는 대한청년단연합회 제2회 정기총회에서 참가단체 29단체, 동대표 108명, 내빈으로 독립단 대표 윤창선(尹昌善)·양기하(梁基河)·전덕원(全德元)·백진해(白鎭海)·김유성(金有聲)·〈새벽달〉신문사장 이시열(李時悅), 방청객 232명이 모인 가운데 안동교통사무국 참사(參事)로서의 활동실적이 보고되기도 하였다.
1922년에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선전국장으로 활약하였으나 대한통의부 내에서 불행하게도 내분이 일어나, 청년파(靑年派 : 신사상계로 상해파)인 양기탁(梁起鐸)과 유림파(儒林派 : 독립단계)인 전덕원(全德元)의 의견불화로 의군부(義軍府)가 독립을 보게되자, 양부 사이에서 대규모 유혈전이 벌어지게 되어 1923년 4월 관전현(寬甸縣) 소아하(小雅河)에서 전덕원의 부하 20여명에게 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841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71·79면
- 항일순국의열사전 2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6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