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 김수길(金壽吉)·허성도(許聖徒)·이기명(李基明)·이영식(李永植) 등과 함께 조국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만세시위운동에 호응하여 동포상인들이 폐점철시로 일제에 항거할 것을 촉구하는 동정표시경고문(同情表示警告文) 3백매를 등사하여 대구 시내에 배포하였는데 서문외시장(西門外市場)에서 80여호의 상가가 이에 따라 폐문철시하였다.
이들은 4월 6일 대구경찰서장에게 암살경고문을 우송하는 한편 동정경고문 2호 4백매, 3호 3백매를 등사, 시내 요소에 배포하여 애국시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호소하였다.
또한 일제가 독립운동을 억압할 목적으로 부일배를 앞세워 자제회(自制會)를 조직하자 중추원(中樞院) 참의 박정양(朴定陽)·백응훈(白應勳)에게 암살경고장을 우송하여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들은 보다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펴기 위해 최재화(崔載華)·이종헌(李鍾憲)·이영옥(李榮玉)·이명건(李命健)·이덕생(李德生) 등을 규합하여 동년 4월 17일 비밀결사 혜성단(彗星團)을 조직하였다.
동단은 각종 항일문서·격문을 배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쟁취를 위해 동지를 만주로 파견하여 그곳의 독립투사들과 연계투쟁을 펴 나가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인쇄책·인쇄물배달책·출납책·만주출장책·연락책 등의 부서를 갖추었는데 그는 인쇄물 배달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들은 이후 근고동포(謹告同胞)·경아동포(警我同胞) 등의 항일격문을 등사·배포하였으며 도내의 관공리에게 '경고관공리동포'라는 격문을 우송하여 독립운동에의 참여를 촉구하였다.
또한 민족자산가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의 염출을 호소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동년 5월 중순 일경에 붙잡혀 그는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7·2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46∼1452면
- 고등경찰요사 186·18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56∼3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