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경술국치를 당함에 1912년 김규환(金奎煥)등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1913년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에서 대종교인 윤세복(尹世復)과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에 공헌하였다.
1919년에는 무송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재무부장으로 일하였으며, 1925년 1월 길림(吉林)에서 양기탁(梁起鐸)·이청천(李靑天)·김동삼(金東三)·오동진(吳東振) 등 혁명거두들이 모인 가운데 정의부가 조직되었을 때에 그는 이 탁(李 )·현정경(玄正卿)·김동삼·이청천·김상덕(金尙德)·이진탁(李辰卓)·김 찬(金燦)·이규동(李圭東)·현익철(玄益哲)·이진산(李辰山)·오동진·이 웅(李雄)·고이허(高而虛) 등과 함께 중앙위원으로 피선되는 한편 교육위원에 임명됨으로써 재만한인의 교육사업을 통한 항일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7년 4월에는 농촌 개발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김기풍(金基豊)·김이대(金履大)·김원식(金元植)·김 호(金虎)·김동삼·김정제(金廷濟)·김유성(金有聲) 등과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조직하여 재만한인의 산업상 생산의 증가를 위하여 근대과학적 영농업과 기계와 수력전기개발에 노력하였다. 또한 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각 처에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국내에서 중등이상의 학교를 졸업한 자를 교원으로 초빙하였으며 교포의 보건 위생을 위한 계몽과 의료원 설치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8년에는 신민부·정의부·참의부 대표가 길림성(吉林省)의 동북에 있는 대둔(大屯)에서 모여 결성한 민족통일단체인 국민부(國民府)에 참여하여 심용준(沈龍俊)·이일세(李一世)·이동림(李東林)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또한 1929년 3월에는 민족혁명운동가들이 길림시(吉林市) 우마행호동(牛馬行胡同)의 국민부사무실에 모여 국민부를 지지 육성하는 유일당의 필요성을 느껴 '조선혁명당'을 조직하였을 때에 이 탁(李 )·이 웅(李雄)·이진탁·장세용(張世湧)·이동산(李東山)·문시영(文始榮)·김석하(金錫河)·현익철(玄益哲)·현정경(玄正卿)·김보안(金保安)·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31년에 길장선(吉長線) 관성자(寬城子) 서북 40리에 있는 만보산(萬寶山) 부근에서 한·중·일 삼각관계의 미묘한 이해관계에서 발생한 한·중 농민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국민부에서 조직한 만보산사건대책위원회의 회원으로서 최동오(崔東旿)·김이대(金履大) 등과 함께 진상 조사에 노력하는 한편 중국 당국에 교섭하여 일본의 침략적 음모를 폭로하고자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429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35·144·149·152·16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