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9년에 평안북도 철산(鐵山)사람 장재순(張在淳) 등과 함께 평양에서 청년회(靑年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3·1독립운동에 대비하여 국기를 제작하였고, 3·1독립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와 국기분배 책임을 담당하였다. 또한 지방 순회강연과 미주(美洲) 및 상해소식을 등사·살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조직하여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는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손정도(孫貞道)의 비서직을 담당하였으며, 1921년에는 군자금 모금차 입국하였다가 일경에게 탐지되었으나 가족의 협조로 도피하여 다시 탈출한 뒤 연길현(延吉縣) 쌍하진(雙河鎭)에서 한인자위단(韓人自衛團)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21년 9월 20일경에는 상해로 돌아왔다가 위해위(威海衛)로 가서 그곳의 동지들과 독립운동에 관하여 협의하였다.
1923년에는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의 명에 의하여 공채모집을 위해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활약하였으며 1925년에는 임시정부 교통부장 남형우(南亨祐)의 명에 의하여 중국 산동성(山東省)과 진남포(鎭南浦)등지의 연락조직책으로 책임자를 선정하고 귀환하였다.
한편, 만주지역에서는 정의부 중앙상임 대의원, 국민부 중앙 집행위원 겸 경무과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의열단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34년 4월부터는 길림(吉林)지방에서 일군의 감시를 받으며 영농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118·286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38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9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4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471·478·484·94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3·12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