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중국에 망명하여, 1924년에는 다물단원(다물단원 (多勿團員) )으로 상해·북경·천진 등지에서 적의 밀정을 처단 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고 하고, 1929년 3월 독립군 중진들이 길림시 우마행호동(우마행호동 (牛馬行胡同) )의 국민부(국민부 (國民府) ) 사무실에 모여 민족유일당인 조선혁명당(조선혁명당 (朝鮮革命黨) )을 조직하자, 조선혁명군에 입대하여 무장항일전선에 참여하였으며, 1933년 5월 양세봉(양세봉 (梁世奉) )사령관의 지휘아래 청원(청원 (淸原) )을 수비하였으나, 적의 대규모 기습공격으로 이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김일룡(김일룡 (金一龍) )·박석원(박석원 (朴錫源) ) 등 30여명과 함께 전사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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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그의 출신등 인적사항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일찍이 중국에 망명하여, 1924년에는 다물단원(多勿團員)으로 상해·북경·천진 등지에서 적의 밀정을 처단하는등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1929년 3월 독립군 중진들이 길림시 우마행호동(牛馬行胡同)의 국민부(國民府) 사무실에 모여 민족유일당인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조직하자, 조선혁명군에 입대하여 무장항일전선에 참여하였다.1933년 5월 일군 관동군사령부는 1,500여명의 대대적인 병력을 파견하여 비행기의 엄호하에 영릉가(永陵街)로 진격하였다. 피아간에 격전이 벌어졌으나 무기와 훈련이 부족한 아군은 통화성(通化城)을 포기하고 몽강( 江)의 삼림지대로 퇴각하였다.조선혁명군은 양세봉(梁世奉)사령관의 지휘아래 청원(淸原)을 수비하였으나, 적의 대규모 기습공격으로 이 전투에 참전하였던 그는 김일룡(金一龍)·박석원(朴錫源) 등 30여명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4면
- 무장독립운동사 1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0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1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640·642·69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