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인 1940년 3월에 안병익(安秉翊)·김사복(金思宓)등과 함께 동경시내 김사복의 방에 모여 독립을 목적한 항일결사 죽마계(竹馬稧)를 조직하였다.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죽마계는 문맹퇴치 및 출판사업을 통한 정신적 계몽을 실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또 경제력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독립기반을 조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죽마계는 동경에 본부를, 서울에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매년 7월 18일 서울에서 정기총회를 갖기로 하였다.
그는 죽마계의 간사로 활약했으며, 또한 동지규합 및 계원의 단결에 힘을 쏟았고 구철회(具喆會)·김홍기(金泓沂)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다.
1940년 7월 15일에 그는 안병익·김사복·이해룡(李海龍) 등과 서울 정릉에서 모임을 갖고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논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년 7월 18일에 서울에서 제1회 정기총회를 가졌는데, 이때 서울에 있던 본부를 동경으로 옮겼으며 한글신문의 강제폐간의 반대하여 항거하기로 하였다.
그후 그는 계의 간사로서 계의 조직체제 및 활동방침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부의 활동을 확대하는 한편 활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서울에 사업부를 설치하였다.
1941년 6월에는 김사복·이해룡 등과 함께 일본 신내천현(神奈川縣) 해빈호텔에서 여운형(呂運亨)으로부터 제1차세계대전 후에 있어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상황을 청취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6월에 계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동경에서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43년 3월 동경형사재판소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1945년 3월 2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797·79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3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81·1082·1083·1247·1248·124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745·746·7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340·341·342·345·346·347·3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