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월 1일 중국 (中國) 상해 (上海) 에서 나창헌 (羅昌憲) , 강창제 (姜昌濟) ,고준택 (高俊澤) 등이 조직 (組織) 한 병인의용대 (丙寅義勇隊) 에 가입 (加入) 하여 일본대사관 (日本大使館) 폭파 계획 (爆破計劃) 을 위해 시한폭탄 (時限爆彈) 을 만들어 일본대사관 (日本大使館) 창고를 폭파 (爆破) 시키는데 공 (功) 을 세웠으며, 1927년 3월에는 한국노병회 (韓國勞兵會) 에 가입 (加入) 하여 1931년 까지 활동 (活動) 하였으며 황포군관학교 (黃浦軍官學校) 기술교관 (技術敎官) 을 지내다가 월남 (越南) 으로 가서 병서 (病逝)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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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26년 1월 1일 중국 상해에서 나창헌(羅昌憲)·강창제(姜昌濟)·고준택(高俊澤) 등이 조직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대원으로 가입한 그는 의용대의 일본대사관 폭파계획에 따라 거사에 쓸 시한폭탄을 제조하여 대원 강창제·김창근(金昌根)·이성구(李成九)에게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의용대원 강창제 등은 그가 제공한 폭탄으로 일본대사관 창고를 폭파하고, 일경 2명을 중상시키는 공을 세웠다.
1927년 3월 상해에서, 1922년 김구·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군 등 무력기반 확충을 위해 조직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에 신입회원으로 가입한 그는 한국노병회의 중국 각급 군사학교로의 파견 수학계획에 따라 특별회원으로 선정되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의 무한분교(武漢分校)로 파견되어 포과(砲科) 기술교관으로 근무하였다. 이와 동시에 1927년 초반 무한분교의 한인 교관 및 입교생을 주축으로 결성된 유오한국혁명청년회(留奧韓國革命靑年會) 회원으로 가입하여 한국의 혁명이론 및 방략 연구 등 독립운동의 방안 마련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605·614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414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213·278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5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