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남 사람이다.
1919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교통부 소관으로 국내와 임시정부를 연결시킬 정보연락기관을 설치할 목적으로 '교통사무국(交通事務局)' 장정을 공포하여 각 군과 면에 각각 교통국(交通局)과 교통소(交通所)를 설치하여 임시정부의 재정자금 모집, 국내의 정보 수집·보고, 임시정부의 지령과 서류의 국내 전달, 독립운동을 위한 인물 소개와 연락 등의 업무를 전담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 년 동안 함경남도 교통사무국 통신원으로 활동한 그는 1921년 3월 임시정부로부터 김정익(金鼎益) 등 31인에게 함남지역 「교통지국장 및 참사(參事) 임명장」을 송달하라는 명령을 받고 통신원 김인식(金仁植) 등과 함께 국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김인식이 3월 4일 함남 북청(北靑)에서 일경에 의해 붙잡히자,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3월 20일경 함남 단천군(端川郡) 수하면(水河面) 중평리(中坪里) 오원세(吳元世)의 집에 단신으로 도착·은신하면서 김정익·김기삼(金基三) 등 31인에게 임시정부 교통국 임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밀정 심익하(沈翊河)가 일경에 밀고하여 오원세의 집이 포위당하게 되자, 오원세와 함께 총을 쏘며 항전하다가 중상을 입고 붙잡혔다.
1922년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고 판결의 부당성을 강력히 항거하였으나, 일본인 검사에게 고문당한 끝에 3일 만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131·135·137·155·161면
- 독립신문(1922. 8. 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496·94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전권 57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6·208·30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