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흥사단 단원인 김홍서(金弘敍)의 동생이다. 중국 남경(南京)에서 공부하다가 1927년 5월 상해(上海)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캔사스대학 농과대학에서 수학하고 1934년 초 상해로 돌아왔다. 1937년 12월 한구(漢口)에서 첩자로 오인을 받아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체포되었다가 이에 가입하였다.
1938년 3월 중경(重慶)에 와서 중앙대학교의 농업학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조선민족혁명당 중경지부 제1소조회에 소속되어 서기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 같은 해 5월 1일 중경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중경지부’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1942년 10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정계 인사 및 중국의 군·정계 인사와 중한문화협회(中韓文化協會)를 설립하고 한중 양국의 의사소통과 우의증진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43~1944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감찰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2월 ‘조선민족혁명통일동맹’을 이끌던 유동열(柳東說), 조선민족혁명당을 탈당한 김붕준(金朋濬) 등과 신한민주당을 조직하고, 상무위원 겸 조직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5. 9) 제4호 118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46권 206~209, 211~212, 22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7집 1111면
- 신한민보(新韓民報)(1942. 10. 15)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9) 제37권 88, 97, 602~603, 609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제40권 42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4권 1036면
- 흥사단 단우이력서(독립기념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