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제갈관오는 1895년 5월 9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 서리(西里)에서 출생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8월 20일 국무원령 제2호로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臨時地方交通事務局章程)」을 발표하고, 국내외의 독립운동 세력과 일반 행정조직을 연결시키려고 임시지방교통사무국을 설치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기관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은 신의주 맞은편에 위치한 안동교통국(安東交通局)이다. 1919년 9월 25일 홍성익(洪成益)이 교통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제갈관오는 사리원지국장에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내로 반입된 문서들은 비밀리에 평양·사리원·서울 등지의 지국으로 전달되었고, 반대로 국내지역에서 수집된 정보를 비롯한 물품·자금 등은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달될 수가 있었다.
사리원지국장 제갈관오는 임시정부의 문서들을 반입하여 이를 각 지역에 뿌렸다.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냈다. 1920년 1월 24일 밀정의 밀고로 안동교통국장 홍성익을 비롯하여, 안동국 서기인 황대벽(黃大闢) 등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안동교통국과 관련된 의주교통지국 등 조직망이 탄로났다. 사리원지국장 제갈관오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제갈관오는 신의주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1920년 10월 6일 출옥했다. 그가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있을 당시인 1920년 9월 10일 부인 우신애(禹信愛)도 황해도 교통국장 손재흥(孫再興) 등과 『독립신문』과 『신한청년』를 비밀리에 서울에 반입하였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옥 후 제갈관오는 황해도 수해구제회(水害救濟會) 서선강연단(西鮮講演團)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 28일 서선강연단 일행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읍동면(邑東面) 양책동(良策洞)에 있는 사립정칙학교(私立正則學校)와 기독교인들의 후원을 받고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1월 1월에는 의주군(義州郡) 위화면(威化面)에서 기독청년회 후원으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의 사회활동을 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11. 6, 11. 10)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8) 제33권 289~29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