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19년 3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고 고향인 창성군 읍내에서 기독교와 천도교 간부들을 소집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4월 1일 읍내 서문 밖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뒤, 일경의 검거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1919년 11월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투신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7월 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조직이자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부(聯通府)의 평안북도 창성군 장서(掌書)로 임명되어 임시정부의 명령과 공문 전달, 구국재정단원(救國財政團員)의 모집, 군자금의 수합과 납부, 독립운동에 필요한 정보통신 연락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1년 7월 임시정부로부터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받고 신용철(申容澈)·강리달(姜利達) 등과 함께 국내로 밀파되었다. 귀국 후 무사히 임무를 마친 그는 동년 음력 8월 12일 동지들과 함께 상해를 향해 귀환하던 도중, 압록강변에서 일경의 추격을 받자 도강(渡江)하다가 익사 순국하였다.
1921년 9월 2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고인의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도식을 개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신문(1921. 12. 26)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474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10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4·19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28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