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1923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서 단원을 모집하자 입단하고 암살과 파괴노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1924년 4월 중국 상해에서 개조파(改造派) 계열의 윤자영(尹滋英) 등 청년 동지 60여 명과 함께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를 결성하고 세력을 넓혀 의열단을 능가하는 상해 제일의 청년단체로 성장시켰다.
그 후 1925년 5월 중국 상해에서 5·30 총파업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반제운동(反帝運動)이 확산되어 가자, 이에 자극을 받은 한국인들은 이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상해에서 청년동맹회 역시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윤자영·김규면(金圭冕) 등 6명과 함께 청년동맹회를 대표, 6월 5일 학생연합회(學生聯合會)를 방문하여 동정의 뜻을 표하고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를 위해 학생연합회로부터 반일전단 수천 장을 교부받은 그는 동지들과 함께 자동차에 싣고 다니면서 프랑스조계에 살포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데 노력하였다.
1928년에는 중국 상해에서 의열단의 김원봉과 회합하여 약화된 의열단의 세력을 확대 강화시키고자 노력하다가 1930년 5월 11일 3년 간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고 송환당하던 중 이튿날인 12일 상해에서 탈출하였다.
그 후 1934년경 광동지방(廣東地方)을 중심으로 반일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9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8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