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현. 평양)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1시를 기해 평남 평양 숭덕학교에서 거행된 광무황제(光武皇帝) 봉도식(奉悼式)에 모여든 천여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앞장 서 전개하는 등 활동을 벌이다 출동한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리하여 1919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그 후 1921년경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함으로써 주일학교와 진흥회를 설치하려 했던 그는 중국 상해로 망명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투신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임시정부의 재편을 놓고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 김창환(金昌煥)과 함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대표로 선임되어 안창호 등의 개조파의 논리를 지지하며 개조파 부속대표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07·309면
- 기독교대백과사전 27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6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7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53면
- 동아일보(1927. 4. 2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63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