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31년 후반기부터 일제의 중국대륙 침략이 본격화됨에 따라 김구(金九)는 한인독립운동과 중국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 간에 국제적 연대를 형성할 목적으로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국민당정부의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토대로 독자적인 투쟁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 결과 1934년 2월 김 구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소재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 내에 한인특별반을 설치·운영하였다.
이를 위해 김 구는 후일 설치되는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 학생부 책임자 노태연(盧泰然) 등을 파견하여 군관학교 입교 희망생을 모집하였다. 이 때 1934년 7∼8월경 노태연의 권유로 중국 남경 노태연의 집에 모인 그는 입교 희망생 8명과 함께 동년 10월 중앙육군군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하여 예비반에 들어와 있다가 1935년 9월 제11기생으로 편입·입교하여 공병대(工兵隊) 학생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뒤 중국 상해로 파견되었다.
그리하여 1936년 8월 14일 군관학교 동기생 김순곤(金順坤)·김학무(金學武)·김파(金波) 등과 함께 중국 상해의 일본총영사관을 폭파하기로 계획하고 불란서조계 환룡로(環龍路) 태흥방(泰興坊)에서 폭탄 2개를 완성하고 3개째를 제조하다가 갑작스런 폭발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제8권 512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48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013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78 585 59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