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만주 (滿洲) 관전현 (寬甸縣) 에 있는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결사대원 (決死隊員) 으로 미국의원단 (美國議員團) 이 입국시찰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일제기관을 파괴하며 일제고관을 주살 (誅殺) 함으로서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나타내며 독립성취를 목적하여 박치의 (朴治毅) 에게 취지를 설명한 후 찬동을 얻고 권총과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여 선천군청 (宣川郡廳) 과 선천경찰서 (宣川警察署) 를 투탄 (投彈) 케 한 후 피체 되었으나 탈옥하고 만주 (滿洲) 에서 청소년 교육사업에 이바지하다가 1934년 10월 장춘 (長春) 에서 일군 (日軍) 장교 (將校) 를 살해한 후 피체 되어 징역7년을 받고 복역 하다가 옥중사 (獄中死)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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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1920년 미의원단 내한시 광복군총영의 지시를 받고 임용일(林龍日)·김응식(金應植) 등과 함께 제3대 결사대에 소속되어 선천(宣川)지역으로 진입하였다.
이 결사대의 목적은 미국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일본 관공서 폭파 및 일제고관의 암살을 통하여 한국인의 항일의식을 보여 국제여론을 환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선천군청과 선천경찰서를 폭파하고 도피하였으나 일경의 추적을 받고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탈옥하여 무사히 만주로 건너가 길림(吉林)·흑룡강(黑龍江)방면에서 교포 교육사업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다가 장춘(長春)에서 일본군 장교 살해사건으로 1934년 10월 일경에게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으며, 신의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6년 7월 26일 옥사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78면
- 기려수필 296면
- 동아일보(1920. 9. 22字)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74·27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78·179·645·650·651·652·65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84·942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07면
- 매일신보(1920. 9. 22, 1922. 1. 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3·332·333·33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