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1년 중국 장백현에서 대한독립군비단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해 9월 함남 갑산의 함정주재소와 동인면사무소를 공격하였으며, 1926년에는 대한독립광정단 경무부 경시로, 1933년에는 조선혁명단을 조직하여 함남 갑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두 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1910년을 전후하여 길림성 장백현(長白縣)으로 건너가 18도구(道溝)에 거주하였고,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21년 장백현 소재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의 통신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 18~19일경 군비단 총무 윤덕보(尹德甫)의 명령으로 김병국(金秉國) 등 단원들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24일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리(含井浦里)에 도착하였다. 김병묵(金秉默)의 지휘로 함정경찰관주재소(含井警察官駐在所)와 영림창(營林廠) 함정보호구(含井保護區), 동인면(同仁面) 면사무소를 공격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모
집하여 귀환하였다.
1923년 김성극(金星極)·김호익(金虎翼) 등을 중심으로 흥업단(興業團)·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대한독립광정단(大韓獨立光正團)을 조직하자, 광정단 경무부(警務部) 경시(警視)로 임명되어 조동직(趙東稷) 등 단원들과 국내로 잠입하여 수십 여 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26년 9월 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가택침입·공갈·대정(大正)8년 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1월 22일 출옥하였다.
출감 후 다시 이창범(李昌範) 주철(朱鐵) 등 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 조선혁명단(朝鮮革命團)을 조직하고 1933년 4월부터 1936년 7월까지 함남 갑산군 운흥면을 중심으로 10여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36년 7월 2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6. 11. 15)
- 朝鮮日報(1926. 11. 16, 1937. 5. 7)
- 假出獄執行濟의 件 報告(咸興刑務所長:1931. 1. 22), 假出獄의 件 具申((咸興刑務所長:1931. 1. 15) 假出獄關係書類
- 每日申報(1926. 9. 19, 1936. 7. 16, 1937. 5. 7)
- 東亞日報(1936. 7. 16)
- 時代日報(1926. 6.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