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태준은 1920년 3월 약 100여 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 방면으로 이동하여 근거지를 구축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 이후 재만 독립군단인 혈성단(血誠團)의 간부가 되어 부하 독립군들을 이끌고 북만주의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혈성단은 독립군들이 장기 항일전을 다짐하며 결성한 독립군단 통합체인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에 가담하였다. 이 대한독립군단에 합류한 독립군단은 서일(徐一)을 총재로 한 북로군정서를 비롯해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국민회군(國民會軍)·훈춘대한국민회(琿春大韓國民會)·대한신민회(大韓新民會)·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의군부(義軍府)·야단(野團)·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등과 혈성단이었다. 이 같이 여러 군단이 합병한 대한독립군단은 총 병력은 약 3천 500여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전열을 정비한 대한독립군단은 청산리대첩 후 항일전을 대비하며 1921년 초 소련 연해주로 이동했다. 소련 자유시까지 이동한 대한독립군단의 독립군들은 1921년 6월 독립군 대수난 사건인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을 겪었다. 그러나 자유시참변 후에도 혈성단은 전열을 정비해 항전의지를 불태우다 북만주로 돌아왔다. 자유시에서 다시 혈성단이 부활했을 때 김태준은 군사고문을 맡아 활약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의 不穩文書 配付의 건(1921. 12.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6권 390~392면
- 武裝獨立運動(1920. 3.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5)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3권 397, 398면
- 間島 및 同 接壤地方에 있어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件(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 東亞日報(1922. 9.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