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6409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金白祐
이명 없음 성별 남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년도 2009 훈격 애족장
1920.1. 만주 간도에서 간도청년회 총부 의사부 부원으로 선임

되어 활동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백우는 1919년부터 중국 간도(間島)에서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 발기인 및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5월경 재만 독립군단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일대에서 편성된 독립군단이었다. 대한제국의 복벽(復辟)을 주장한 이 군단은 안도현(安圖縣)·장백현(長白縣) 등에 분단을 두었다. 1920년 8월 현재 200여 명의 병력에 소총 400정, 탄약 1만 1,000발, 권총 30정을 보유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20년 10월 북간도 청산리 일대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에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의 일원이 되어 참가하였다. 청산리대첩 후에는 일부가 다른 독립군단들과 함께 북만주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간도지역에 계속 남아 함경도와 평안도 등으로 국내진입전을 전개해 큰 전과를 올렸다.

대한광복단의 참모인 김백우는 청산리대첩 후 장백현에 머무르며 부하들을 이끌고 무장활동을 펼쳤다. 산세가 험한 장백현의 지형을 이용해 김백우를 비롯한 대한광복단 대원들이 이같이 끈질기게 활동을 벌이자 일제는 적지 않은 병력을 계속 투입해 압박해 들어왔다. 이에 김백우는 부하 600여 명을 이끌고 안도현으로 이동하여 항일무장활동을 이어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국지역 수집자료(국민대학교, 2004) 제7권 152, 153면
  • 不逞鮮人 歸順 및 光復團의 現況(1924. 1. 14)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7)
  • 間島 및 接壤地方에 있어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건(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2)
  • 間島地方 不逞鮮人團의 정세에 관한 건(1920. 8. 26)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21)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5) 27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백우 - 미상 1919년 간도청년회, 1920년 대한광복단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건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백우(관리번호:76409)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