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백우는 1919년부터 중국 간도(間島)에서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 발기인 및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5월경 재만 독립군단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일대에서 편성된 독립군단이었다. 대한제국의 복벽(復辟)을 주장한 이 군단은 안도현(安圖縣)·장백현(長白縣) 등에 분단을 두었다. 1920년 8월 현재 200여 명의 병력에 소총 400정, 탄약 1만 1,000발, 권총 30정을 보유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20년 10월 북간도 청산리 일대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에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의 일원이 되어 참가하였다. 청산리대첩 후에는 일부가 다른 독립군단들과 함께 북만주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간도지역에 계속 남아 함경도와 평안도 등으로 국내진입전을 전개해 큰 전과를 올렸다.
대한광복단의 참모인 김백우는 청산리대첩 후 장백현에 머무르며 부하들을 이끌고 무장활동을 펼쳤다. 산세가 험한 장백현의 지형을 이용해 김백우를 비롯한 대한광복단 대원들이 이같이 끈질기게 활동을 벌이자 일제는 적지 않은 병력을 계속 투입해 압박해 들어왔다. 이에 김백우는 부하 600여 명을 이끌고 안도현으로 이동하여 항일무장활동을 이어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중국지역 수집자료(국민대학교, 2004) 제7권 152, 153면
- 不逞鮮人 歸順 및 光復團의 現況(1924. 1. 14)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7)
- 間島 및 接壤地方에 있어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건(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2)
- 間島地方 不逞鮮人團의 정세에 관한 건(1920. 8. 26)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21)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5) 27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