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남만주 지역을 무대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제4중대장으로 활동하다 동지들 간의 알력으로 희생되었다.
김창헌은 1922년 8월 통의부(統義府)가 성립될 때 법무부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25년 초까지 통의부 사령관 부관(副官) 및 헌병대장(憲兵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부터 정의부(正義府)의 헌병대장과 군사부 사령장 대리 및 부관으로 활동하며 그 해 8월에는 다물청년당(多勿靑年黨)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다물청년당은 1923년 겨울 흥경현(興京縣)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으로 이후 다물당으로 발전하였다. 다물은 회복(回復)을 뜻하는 말로 구토회복(舊土回復), 즉 우리 민족의 영토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한 청년들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다물청년당이 다물당으로 전환된 것은 1926년 상반기를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물당은 1929년 2월 해체 선언을 단행할 때까지 주로 정의부의 구역에서 활동하였다.
김창헌은 1928년 중국 길림(吉林)에서 열린 재만운동단체협의회(在滿運動團體協議會)에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29년에 조직된 국민부(國民府)에서는 공안부(公安部) 집행위원과 경호국장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0년 8월 조선혁명군 제4중대장(中隊長)으로 활동하다 국민부가 민족주의파와 공산주의파로 분열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민부에 반대하는 농민동맹(農民同盟)측에 희생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奉天 鮮人 情報에 關한 件(1926. 9.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部-在滿洲의 部(43)
- 大韓統義府의 近況(1924. 9. 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0)
- 不逞鮮人團體 正義府의 現勢에 關한 件(1925. 7. 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1)
- 統義府 現狀 및 寬甸지방 不逞鮮人 名簿에 關한 件(1925. 1.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0)
- 西間島 地方 不逞鮮人團의 統一에 關한 件(1922. 10. 2) 不逞團關係 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大韓統義府 義勇軍 將校會議에서 誓約文 및 決議案(1924. 7. 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9)
- 統義府의 近況(1924. 10. 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部(40)
- 南北滿洲 一帶에서 不逞鮮人團 調査의 件(1925. 4.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1)
- 不逞鮮人團 國民黨 및 다물團에 關한 件(1925. 7. 14) 不逞團關係雜 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5)
- 在滿不逞團竝社會主義團體의 狀況(朝鮮總督府 警務局, 1928. 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424면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제5권 74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572면
- 現代史資料 29, 朝鮮5(姜德相, 1972) 65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國史編纂委員會) 제9권 532면
- 獨立新聞(1923. 6. 13)
- 朝鮮中央日報(1933. 8. 26)
- 思想月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제3권 제9호 32면
- 東亞日報(1930. 11. 2)
- 朝鮮日報(1931. 10. 11)
- 中外日報(1929. 6. 2?9. 13)
- 大韓統義府 會議 決議事項 公布(1924. 2. 25)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8)
- 大韓統義府 義勇軍 第4中隊의 近況(1924. 8.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9)
- 다물靑年黨憲 入手 關한 件(1925. 8. 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部-鮮人과 過激派(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