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난하는 1920년 중국 집안현(集安縣)에서 한족회(韓族會) 총무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한족회는 1919년 1월 서간도(西間島)의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조직되었다. 이전부터 이 지역 한인의 자치기구로 운영되어 오던 부민단(扶民團)의 제도와 사업을 이어받아 유하,해룡(海龍),통화(通化),흥경(興京),임강(臨江),집안(集安),환인(桓仁)현 등에 산재한 자신계(自新契),교육회(敎育會) 등이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본부를 삼원포에 두고 중앙에 총장을 선임하여 단체를 총괄하는 한편, 이주 한인사회 각지에 총관(摠管)을 두어 관할하였다. 정무총장 이탁(李沰), 서무부장 김동삼(金東三), 외무부장 양규열(梁圭烈) 등이 중요 간부였으며, 3.1운동을 전후하여 남만지역 민족진영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김난하는 1921년 동로사령관(東路司令官) 대리(代理)로 사로동맹회(四路同盟會)에 참가하여 국내의 중요 관공서(官公署) 습격을 결의하였으며, 1923년 집안현 양간구(楊干溝) 독립단 지단(支團)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大正 10年 中에 있어서 管內 不逞鮮人의 狀況(安東領事 : 1922. 2.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 西間島 方面 不逞鮮人團의 謀議 其他에 관한 건(1921. 10.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42(國史編纂委員會) 中國東北地域篇 ⅳ 57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