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20년 중국 혼춘현에서 대한국민회 모집종사원과 경호원으로 활동하였고, 1921년 대한군정서원 문창학, 김학섭 등과 함께 함북 경원군의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하여 일본 경찰을 사살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더불어 북간도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단체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모집종사원으로 활동하였고, 1920년 5월에는 남부지방회 천경지회(川京支會)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음력 12월 대한군정서원(大韓軍政署員) 김학섭(金學燮)은 강병관·강석훈과 러시아 시지미 지방에서 만나 국내로 잠입하여 일제 관공서를 공격하고 무기 등을 확보할 것을 협의하였다. 공격목표는 함북 웅기(雄基)항으로 결정하였다.
김학섭 등은 사전 준비 차 2일 웅기로 출발하고, 김학섭으로부터 이 계획을 전해들은 채윤문 일행은 그날 밤 교도(敎導)가 되어 시지미를 출발하여 중국 간도 일하후(日下垢)에서 김학섭과 회합하였다.
그러나 고된 행군에 대원들의 낙오하는 등 차질을 빚자,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함북 경원군(慶源郡)의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공격은 2개조로 나뉘어 주재소와 수비대를 동시 공격하기로 하였다. 5일 새벽 1시, 다른 1개조가 주재소를 공격하는 동안, 김학섭과 채윤문 등은 신건원수비대 막사를 공격하여 수비대의 출동을 제압한 뒤 퇴각하였다.
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의 결석재판(缺席裁判)에서 소위 살인,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淸津支廳:1923. 5. 26)
- 間島 不逞鮮人團에 관한 參考書類(1920. 10. 28)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6)
- 鮮人決死隊에 關한 黃丙吉 等의 措置講究의 件(1919. 5.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11
- 朝鮮日報(1923. 6. 23)
- 獨立新聞(1923. 6. 13, 10. 13)
- 東亞日報(1923. 6. 2, 6. 23)
-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1939. 12. 11), 第1審判決判決抄本(京城覆審法院:1923. 6. 20) 假出獄關係書類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2004) 資料41 中國東北地域篇(ⅲ) 121~122면·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2004) 資料43 中國東北地域篇(v) 91면
- 대한군정서 군자금 독촉서 외(2) (독립기념관 소장)
- 불령선인의 행동에 관한 건(1920. 8.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