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장백현·임강현 일대의 한인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1919년부터 1923년까지 태극단, 광복단 서기, 광정단 재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18년 중국 장백현(長白縣)으로 이주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장백현·임강현(臨江縣)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한인들에게 강연을 하며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조인관(趙仁官) 등이 임강현에서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하자, 그해 11월 태극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이범윤(李範允) 등이 조직한 광복단(光復團)에서 서기로 활동하였다. 광복단을 비롯한 태극단·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 등은 종종 다른 독립운동단체와 합동작전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연합회는 1921년 11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재편되었고, 1923년 광정단(匡正團)으로 발전하였다. 광정단이 창립되자, 재무부장으로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1923년 8월 20일 정철호(鄭哲澔)·남홍극(南洪極)·김화성(金和聲)·유영기(劉永基)와 함께 중국 관헌에게 붙잡혀 혜산진의 일본 경찰에게 넘겨졌다.
1923년 11월 2일 함흥지방법원 북청지청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滿洲의 部 38·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445면
- 新韓民報(1923. 12. 20)
- 大韓獨立光正團 및 長白縣光復支團 組織表(臨時報 제71호)(1924. 2.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
- 刑事控訴事件簿·獨立新聞(1923. 11. 10)
- 東亞日報(1923. 11. 14, 11. 17)
- 조선독립단연합총회 개최(1921. 11.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시베리아 13
- 朝鮮日報(1923. 11.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