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05년 영국인 마야스가 멕시코의 어저귀농장에 한국인을 노예이민 보내기 위해 한국에서 대륙식산회사(大陸殖産會社)를 경영하던 일본인 대정관일(大正貫一)과 협잡하여 한국인을 모집할 때 응모하여 멕시코로 노예이민을 당하였다. 멕시코 도착 후 어저귀농장 등에서 4년간 고역을 치른 뒤, 1908년 이근영(李根永) 등 8인과 함께 농장주에게 속전(贖錢) 1백 원씩을 주고 계약 1년 전에 풀려났다. 동년 5월 12일 멕시코 한인감리교회를 설립한 그는 동년 10월 전도회(傳道會)를 조직하여 멕시코 한인동포들의 생활을 구제·지도하는 한편, 미국의 민족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와 연락을 취하며 멕시코 한인들의 구제에 힘썼다.
1909년 4월 15일 계약만기와 함께 멕시코 한인 동포들이 해방되자, 미주(美洲)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파견된 특파원 황사용(黃思溶) 등의 도움으로 멕시코 메리다 지방의 한인 동포들을 결속하여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조직하고 민족운동과 동포들의 자치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멕시코 동란으로 미 본토로 이주한 그는 1920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의 실업부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軍務總長) 노백린(盧伯麟) 등이 중국내 항일독립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 비행사양성소(飛行士養成所)를 설립하자 이에 가입하였다. 비행사양성소에서 약 4년간 재무로 활동한 그는 비행기 5대를 매득하여 50여 명의 학생들에게 둔전병식(屯田兵式) 군대교련을 통해 항일 무장투쟁의 사관들을 배출하는 한편,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1천 달러 이상을 후원하여 임시정부 재무부로부터 감사장을 받는 등 민족운동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41·742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06면
- 재미한인50년사(김원용) 16·17·77·78·350·3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4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521·620·654·804·80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22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604·60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