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경북 안동군 임하면 (臨河面) 에서 유인식 (柳寅植) 김동삼 (金東三) 등과 함께 민족 교육 (民族敎育) 을 목적으로 협동학교 (協東學校) 를 설립하여 교사로 재직하며 국권 회복 (國權恢復) 의 인재를 양성하였고 1915년 경북 (慶北) 대구 (大邱) 에서 박상진 (朴尙鎭) 등이 주도 결성한 대한광복회 (大韓光復會) 에 가입하여 고문 (顧問) 으로 활동 (活動) 하였으며 1921년 국민교육회 (國民敎育會) 이사 (理事) 로서 정인호 (鄭寅琥) 등과 함께 구국단 (救國團) 을 조직, 군자금 모집등 임시정부 (臨時政府) 지원활동 (活動) 을 벌이고 1923. 3월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 (朝鮮民立大學期成會) 의 경성지부 발기회 (京城支部發起會) 에 참여하는 등 4년여 (年餘) 의 활동 (活動)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07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에서 유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여 교사로 봉직하면서 국권회복의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어 1915년 대구(大邱)에서 박상진(朴尙鎭) 등의 주도로 결성된 항일 의협투쟁(義俠鬪爭) 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고문(顧問)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 11월경 서울에서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의 이사(理事)로 활동하면서 정인호(鄭寅琥) 등의 주도로 조직된 구국단(救國團)에 가입하여, 상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키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 후보자를 추천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동년 12월 일경에 붙잡혀 1921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는데, 판결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3년 3월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 경성지방부(京城地方部)의 발기(發起) 모임에 참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山(유인식의 호) 전집(1978. 1. 15) 하권 144∼151면
- 임동협동학교교사일동촬영사진(안동판 독립사, 1985. 4. 18 所收)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7면
- 광복회부활취지及연혁(광복회, 1945. 11) 면수 미상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63면
- 엽서(조선민립대학기성회중앙부 발신 김후병 수신, 1923. 4. 30)

